제20회 전국청소년논술토론한마당

논술토론한마당소개

청소년, 시민저항권을 말하다. 제20회 전국청소년 논술토론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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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사민주의는 가능한가?


맑스의 ‘역사 발전 5단계 설’은 우리에게 역사를 인식하는 주요한 체계를 제공합니다. 이 익숙한 방식에 따르면 역사란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제사회’, ‘근대 자본주의사회’, ‘현대’로 구분됩니다. 맑스는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내적 모순으로 인해 붕괴되고 마침내 경제적 평등이 실현되는 공산주의 사회가 올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그것이 만약 실현되었다면, ‘현대’라는 시대규정 뒤에는 다시 ‘공산사회’가 붙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즈음에 이르러 돌아보면 그의 예언은 빗나간 것으로 판명 난 듯합니다. 그것도 약 28년 전에 말이죠.

그가 간과한 것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태동할 때부터 지니고 있던 ‘공급’과 ‘생산’이라는 두 톱니바퀴에 갈마든 내적 모순에 대한 그의 통찰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본주의 수정에 대해, 진보에 대하여, 신자유주의로의 변모 과정까지는 내다볼 수 없었던 것 같네요. 본고는 한국사회에서 사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물으려 합니다. 사민주의의 실현에 대한 논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현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비판적으로 인식해야 하는 대상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라야 전환의 논리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에 동의하신다면, 비록 적중시키지 못한 예언가이나 빼어난 통찰을 지녔음엔 틀림없는 맑스가 주목했던 ‘생산수단’과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했는가, 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즈음에 이르기까지의 경제체제에 대한 약사(略史)를 훑기로 합시다.

알다시피 생산수단은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단으로 공장, 농장 등이 이에 포함됩니다. 생산물은 물질적인 재화와 비물질적인, 계측․계량화하기 어려운 서비스가 있습니다. 원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의해 부의 불평등과 권력이 생겨났지요. 물론 원시 공산사회에는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산(共産)’이란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던 인류는 질적 변화를 위한 일정량의 축적된 노하우와 어떤 우연성의 결합으로 말미암아 농경과 정착생활을 하는 사회로 진입하게 됩니다. 수렴과 채집 때는 그때그때 공평하게 나누어 소비했는데, 농경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의 변별에 따라 잉여생산물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네. 그 같은 생산물로 인해 권력과 계급이 자연스레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긴 세월을 통해 이 계급적 격차가 공고해지면서 고대사회에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체계화됩니다. 그즈음 가장 중요한 생산의 수단은 토지입니다. 이때부터 토지(생산수단)는 타자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의미를 띠게 됩니다. 권력과 계급은 중세 봉건제사회로 진입하면서 더욱 세분화되죠. 고대사회의 계급 구조가 일반적으로 왕, 귀족, 평민, 노예였다면, 왕과 노예 사이에 성직자, 영주, 귀족, 기사, 농노라는 계급으로의 분화가 이루어집니다. 지배계급은 그 계층적 질서를 오래 가져갈 목적으로 생산수단의 소유에 신을 요청함으로써 정신적 측면에서도 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하려고 하지요. ‘왕권신수설’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왕이 사회를 지배할 권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신이 내려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즈음 모든 논리의 정점에 서 있는 신은 어떻게 소환될 수 있었던 걸까요?

이스라엘의 민족종교였던 그리스도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로마의 국교로 지정되면서 세계(유럽)에 영향력을 뻗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신은 완벽하고도 근원적인 일자(一者)였습니다. 한편, 그리스도교의 신은 그리스로마신화 속의 신들과는 달리,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유일신 사상을 교리의 첫 머리에 두고 강조하였지요. 이렇듯 신은 사후 세계를 주관하는 역할과 동시에 현실 세계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주는 역할까지 떠맡고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존재했던 성직자나 장원이라는 생산수단을 소유했던 영주들의 권위는 무려 천 년이나 지속되는데요, 이러한 중세의 균열은 부를 축적한 상인 계층의 등장으로 인해 촉발됩니다. 그들은 토지라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고도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인류는 ‘증기기관’의 발명과 ‘분업’이라는 생산 방식을 만나 근대 자본주의로 돌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같은 공장을 소유한 계급을 ‘부르주아’ 혹은 자본가계급, 유산계급, 또는 시민계급이라는 광의의 호칭으로 부르게 됩니다. 이 같은 계급은 기존 체제 이데올로기를 설명할 수 있는 논리인 신의 자리에 ‘이성’을 소환합니다. 왕권신수설은 곧 사회계약설로 대체되었지요. 이러한 역사적 흐름의 정점에서 발생한 것이 1789년에 있었던 프랑스대혁명입니다. 이를 계기로 지배와 예속을 벗은 자유인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량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인류에게 계급이란 완전히 철폐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역시, 생산수단(공장, 자본)을 소유한 부르주아와 그렇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라는 두 갈래의 계급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장원이라는 생산수단이 근대과학기술의 발달과 노동의 분업으로 인해 대량 생산 체제의 상징인 공장으로 바뀌면서 화폐경제가 탄생하고 자본주의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체제는 ‘공급의 과잉’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백화점을 채우고 있는 재화를 떠올리면 수요에 의해 공급이 견인되는 것이 아닌, 공급에 의해 수요와 기호가 견인된다는 점에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발발한 것이 양차 세계대전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표면적인 원인은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를 울린 총탄 한 발 때문이었지만, 실은 산업화에 뒤쳐진 세력(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이 식민지를 통해 공급과잉을 해결하려 군국화를 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네.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역시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갚을 수 없던 독일이 당시 대부업과 은행업에 종사하던 유대인들의 재산을 빼앗아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했던 몸부림이라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추축국인 일본도 메이지유신을 통해 막부 체제가 종식된 후, 천황에 의한 중앙집권적 통치를 맞고 식민지를 갖기 위해 청일, 러일 전쟁을 일으킨 것이지요.
    전쟁은 막대한 수요를 창출해 공급과잉이라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일시적으로 해소했지만, 시장은 언제고 포화상태를 맞게 됩니다. 식민지를 개척하여 수요를 창출하면 좋겠지만, 더 이상 이러한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본가들의 시선에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한 명의 소비자이기도 한 노동자의 소비위축을 불러옵니다. 이러한 악순환 앞에 미국은 정부의 개입이라는 ‘수정자본주의’를 내세워 돌파하려고 했고, 러시아는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공산주의 체제를 선택함으로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건설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독일은 ‘군국화’로 이를 극복하려하였지요. 아무튼 양차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 경쟁으로 돌입합니다. 불을 뿜는 전쟁은 아니지만, 두 체제는 서로를 끔찍이도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냉전시대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식민지라는 시장을 확보해야하는데, 공산주의는 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편, 수요의 증대 방법 가운데 하나인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의 보다 느슨한 고용과 협상의 우선권을 가져야하지만, 이웃 나라의 공산주의체제를 엿본 노동자들의 의식수준은 체제 유지에 상당한 위협으로 인식됩니다. 이때, 소환되는 이데올로기가 중세시대 ‘신’의 개념이 그렇듯 ‘국가’, ‘애국’입니다.
    이 아슬아슬했던 냉전체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5년 소련의 서기장에 취임한 이후 내세운 개혁․개방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종식을 고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세계는 일찍이 겪어본 적 없는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와 있습니다.

거칠게 요약한 역사를 갈무리하며,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이제껏 한국사회는 냉전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분단 이후 한국사회에서 경제적인 진보와 합리성에 대한 목소리에는 ‘빨갱이’ 딱지가 붙었지요. 여전히 공산주의체제와 적대적 관계를 형성했던 원체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제목에 언급한 사민주의라는 단어를 꺼낼 때가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가 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 한다면, 공산주의와 유사한 체제로 보이는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와 어떤 변별을 갖는 것일까요? 한국사회에서 사민주의가 가능하려면 그 레드컴플렉스에 대한 극복이 선행되어야하지 않을까요?

사민주의는 이미 북유럽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선택하고 있는 경제체제로,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통해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생산수단과 자본력을 갖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 대한 빈부격차를 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는 노동의 효율과 자본 유입의 의욕 감소를 야기하죠. 한국, 미국, 일본의 세율이 대략 20% 내외를 유지할 때, 스웨덴, 덴마크의 높은 세율(약5~60%)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세율에 대한 합의는 그 용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겠죠. 한편, 이러한 대중감수성의 이면에 자리한 역사․지리적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우리나라에 비해 산업화가 훨씬 빨랐으며, 식민지를 통한 부의 축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인적 자원 외의 천연 자원이 부족한 데다 내수시장의 저력을 믿기에 1억 이하의 인구수는 턱없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는 높은 대외의존도를 나타나지요. 이 같은 한국사회에서 사민주의는 실현가능한 체제일까요?


<생각할 지점>
* 자유민주주의라고 일컫는 한국사회의 현 체제는 ‘자유(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와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의 합성어이다. 한국사회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흘렸던 피를 떠올릴 때,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앞으로도 더 성숙하고 공고해져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이익과 효용의 측면에서의 합리성을 내세움이 옳은 경제체제에서 자유주의가 아닌 사회주의의 도입은 가능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의 초점을 좁혀서 다시 묻는다. 한국사회에서 복지에 대한 예산편성은 줄여야하는가, 확대해야하는가.